양파 캐러멜화

2019. 4. 5. 11:23인생의 반은 먹는 재미/레서피

반응형

달궈진 팬에서 45분 볶아야

스테인리스 팬에 캐러멜화를 촉진하기 위해 설탕 약간을 뿌려 중간 센 불에 일단 올리고 양파를 썰기 시작한다. 팬이 달궈지고 설탕이 녹으면 양파를 써는 대로 올린다. 격렬한 소리를 내면서 양파가 춤을 추기 보다 조용히 자리만 잡는다면 적절히 달궈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스테인리스 팬을 써야만 할까. 가정에서 팬을 단 한 점만 쓴다면 논스틱(Nonstick) 팬이 정답이다. 특히 계란을 편하게 익힐 수 있지만 이름처럼 식재료가 붙지 않는 코팅이 되어 있으므로 스테인리스 팬에 비하면 양파의 캐러멜화가 원활하지도 않을뿐더러 정수이자 핵심인 눌어붙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기밥솥의 매끈한 내솥 코팅이 관리에는 편하지만 누룽지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누룽지와 구수한 숭늉의 원리도 같은 캐러멜화이기 때문이다. 


정석대로라면 고른 조리를 위해 다 썰어 한꺼번에 팬에 올리는 게 맞겠지만 조리시간이 꽤 길기 때문에 시차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 더군다나 무게 대비 86%에 이르는 수분이 거의 다 빠져 버리므로 양도 엄청나게 줄어든다. 그러므로 일단 팬이 넘쳐나도록 수북하게 쌓아 종종 뒤적이며 볶는다. 양파는 조리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하며 각기 다른 맛을 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색을 차별 없이 사랑한다. 쌈장이나 춘장에 찍어 먹는 생양파 본래의 흰색부터 센 불에 아삭함이 살아 있도록 살짝 볶아 내는 반투명한 흰색, 맛의 바탕을 이루느라 국물에 녹아든 투명함, 그리고 간장식촛물에 맛이 배어든, 까만 색의 바탕을 이루는 흰색까지 말이다. 그 사이 어디쯤에 캐러멜화된 양파가 띠는 아주 진한 갈색도 자리를 잡는다. 


일단 수분이 빠지고 부피가 줄어 든 뒤 온도가 110℃를 넘으면 본격적인 양파의 캐러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조금씩 양파가 스테인리스 팬의 바닥에 붙기 시작할 테니 나무 주걱으로 긁어 낸다. 프랑스어로 ’퐁(fond)’이라고 일컫는 맛의 핵심이자 바탕이다. 종종 코냑이나 럼을 조금씩 부으면 훨씬 더 쉽게 긁어낼 수 있는 것은 물론 알코올이 날아가면서 리큐르 특유의 향도 배어든다. 물론 술이 내키지 않는다면 물을 붓고 긁어내도 좋다. 팬을 가득 메웠던 흰 양파가 검정색에 가까운 갈색의 한 줌이 될 때까지, 적어도 45분은 걸린다. 그만큼 불 앞에서 뒤적일 인내심이 없다면 베이킹 소다 약간으로 산도를 높여 양파의 세포막 파괴를 촉진시키는 꼼수를 쓸 수도 있다. 캐러멜화의 시간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기는 하지만 맛은 좀 아쉬울 수 있으니 적어도 한번쯤은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볼 것을 권한다. 


캐러멜화한 양파 활용법 

그렇게 양파의 폭발하는 단맛에 눈을 떴다. 캐러멀화한 양파는 한식에도 잘 어울린다. 특히 김치찌개 혹은 찜과 천생연분이다. 두툼한 냄비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돼지고기를 튀기듯 지진다. 녹아 배어 나온 기름에 김치와 국물을 넣고 적당히 볶다가 물을 부어 약한 불에 은근히 푹 끓이는 사이에 밥을 새로 짓는다. 금방 지어낸 밥 한 숟가락 위에 푹 익은 김치와 돼지고기, 그리고 캐러멜화한 양파를 조금 올려 먹는다. 요즘 유행인 ‘단짠’의 ‘밀당’은 물론, 매운맛의 허리를 가르며 파고드는 단맛이 입안 구석구석을 메운다. ‘이것이 한식이 꿈꿔야 할 이상적인 맛의 폭발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양식이라면 고전인 프렌치 어니언 수프가 있다. 몇몇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양파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면 나머지는 쉽다. 캐러멜화한 양파에 무엇이든 육수를 붓고 한소끔 끓이는 정도 만으로 수프 자체는 완성이다. 대부분의 수프에는 닭 육수를 바탕으로 만드는데 프렌치 어니언 수프만큼은 쇠고기 육수를 쓰는 게 정석이라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고 캐러멜화된 양파의 맛에는 쇠고기 육수가 확실히 더 잘 어울린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두 가지의 핵심 재료로 마무리하는 게 전통이다. 일단 빵을 한두 쪽 담근다. 수프라는 단어 자체가 라틴어 ‘수파(suppa)’에서 프랑스어 ‘수프(soupe 혹은 sop, 국물에 담근 빵 조각)’을 거쳐 중세에 영어로 정착했다. 프렌치 어니언 수프는 가즈파초, 스페인 마늘 수프(소파 드 아요)와 함께 어원에 가장 충실한 음식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한식, 특히 등갈비나 곱창의 ‘절친’이 되어버린 모차렐라 치즈를 솔솔 뿌려 국물의 열기에 적당히 녹이면 완성이다. 치즈 또한 프랑스의 콩테, 아니면 스위스의 그뤼에르처럼 잘 녹으면서도 감칠맛과 짠맛이 좀 더 강한 것들이 제짝이지만 없어서 수프를 못 먹는 것보다는 모차렐라 치즈라도 쓰는 편이 낫다. 허브의 향을 불어 넣고 싶다면 타임이나 로즈마리를 함께 넣고 끓인다.


출처 : 이용재의 세심한 맛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11221817082745?NClass=SP03


 


반응형